
시한부 선고
전기 기술자이지만 근근이 살아가는 론의 유일한 삶의 낙은 화끈한 밤을 보내고, 피 튀기는 로데오 경기를 즐기는 일이다. 그런 그는 건강 이상을 느끼고 방문한 병원에서 의사로부터 에이즈 진단을 받는다. 론은 흔히 이런 비보를 접할 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슬픔, 부정을 겪으나 삶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미국에서 멕시코까지 넘어가 AZT라는 신약을 투약한다. 그는 본인 몸으로 약효를 실험하며 상태가 호전됨을 느끼지만 이 약은 FDA 승인을 받지 않아 미국 내 반입이 금지된 불법 약물이었다. 하지만 이 약만이 그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고, 또 다른 에이즈 환자인 레이언과 함께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동일 증상의 환자들이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밀수업을 시작한다. 이 약은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지만 이내 FDA에게 발각되게 된다.
우리는 죽어가는 대신 계속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도 주인공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연장한다. 다소 말도 안 되고, 뻔뻔하기 짝이 없는 그의 태도는 억지가 아니라 삶에 대한 집착이었다. 병에 대해 더 공부하고 부딪치고 방법을 강구하는 그의 행보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처럼 보이는 제도와 규정을 끝내 바꿔냈다. 그 과정에서 매튜 매커니히가 연기한 론의 심리에 집중한 연출은 시한부 통보 이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잡초처럼 살아남아 또 친구를 잃고, 좌절하고 끝내 이뤄낸 론이 성숙해지는 과정을 함께 보게 된다.
죽음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다
예전 영미 시 수업에서 '황무지'를 읽고, 길이도 길고 해석도 어려워서 포기했던 기억이 있는데 영화를 보고 오랜만에 이 시를 다시 찾아 읽었다. 이번에도 충분히 이해가 가진 않았지만 생명의 기운이라곤 하나 없는 척박한 황무지에 꽃이 필까 희망의 씨앗은 없는 것인가 하는 시가 전해주는 뉘앙스가 더 진하게 다가온다.
나이를 먹어가며 배운 것은 생각보다 죽음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는 것, 당장 쇼핑몰 문을 나가자마자 예상치 못하게 마주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죽음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언제든 어떻게든 준비 없이 죽음을 마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이제 이해했지만 과연 실제로 나에게 주어졌을 때 어떠한 모습과 태도로 받아들여야 할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론이나 폴 칼라니티가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써 내려간 <숨결이 바람 될 때>의 폴의 생명에 대한 집착은 놀라울 정도였다.
'죽을병에 걸렸다'라는 전제하에 난 그동안 못해봤던 것들을 하며 버킷 리스트를 지우는 일에 매진하지 않을까라고 막연히 생각해 본다. 마지막 불꽃놀이를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그동안의 내 삶과는 거리가 먼 죽음을 앞둔 사람의 과감함과 객기, 내지는 용기로 '쟤가 죽을병에 걸렸나 왜 저래?' 소리를 들었을 텐데 이 주인공들은 도저히 암환자의 삶이라고 보기 어려운 힘들고 먼 여정을 묵묵히 해나가는 폴의 선택에 큰 감동을 받았다.
특히 앞서 거론한 황무지 시는 폴이 숨이 꺼져가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입으로 되뇌었던 시이다.
언젠간 마주할 죽음의 순간에 내가 이루고자 했던 목표 속에서 계속 살아가고, 삶에 대한 집착으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