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헤어질 결심은 살인 사건을 다루는 수사극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애착 스타일이 다른 두 사람이 서로를 망가뜨리면서도 놓지 못하는 이야기를 다루는 심리가 관건인 영화입니다. 형사 해준과 피의자 서래가 만들어 가는 기묘한 관계를 애착, 죄책감 그리고 욕망이라는 총 세 가지 키워드로 분석하겠습니. 이 관점에서 보면, 이 영화가 불륜 멜로가 아니라 사람의 심리를 얼마나 정교하게 다룬 작품인지 알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 속 주요 장면과 인물 행동을 바탕으로 두 사람의 심리 구조를 분석하고, 왜 그들이 결국 ‘헤어질 결심’이라는 제목처럼 파국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짚어봅니다.
불안한 해준과 서래의 애착 관계

둘의 만남은 수사관과 피의자로부터 시작합니다. 동시에 서로의 결핍을 파악한 두 사람이 빠르게 감정적으로 엮여 들어가는 과정입니다. 해준은 외근과 야근이 일상인 형사이고 그는 아내와 떨어져 지내며 만성적인 불면증을 갖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경찰이지만, 내면에는 자신을 이해해 주는 존재를 갈망합니다
서래 역시 살면서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해 본 적이 없는 인물입니다. 이민자 신분, 폭력적인 남편, 정서적 불안이 그녀를 항상 어딘가로 도망갈 준비를 한 사람처럼 보이게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도망가야 할 때보다 통제와 감시 상황에서 더 안정감을 느끼는 태도를 보입니다. 경찰서 조사실에서 쉽게 잠들고, 그가 자기를 지켜보는 걸 좋아하며 통제 속에서 오히려 애착 대상의 관심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해준에게 감시는 서래를 의심하는 행위이자 동시에, 그를 잠들게 하는 ‘자장가’ 역할을 합니다. 서래의 음성 메시지를 들으며 해준이 깊은 잠에 드는 장면은, 그에게 서래의 목소리가 곧 ‘안전 신호’이자 애착의 증거임을 보여줍니다.
서래는 해준이 자신을 지켜본다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허용합니다. 그녀에게 감시당함은 ‘선택받음’입니다. 누군가 자신의 삶을 들여다봐 주고 있다는 것, 감시는 두 사람에게 서로를 향한 애정이자 애착을 확인하는 방식이 됩니다.
이처럼 해준과 서래는 불안정한 애착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서로에게 안정감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안정감이 항상 ‘범죄’와 ‘의심’ 위에 놓여 있었다는 점입니다. 두 사람은 상대를 믿고 기대고 싶지만, 의심하고 조사하는 피의자 신분의 관계가 계속됩니다. 결국 이 모순이 그들을 치유가 아닌 파국으로 이끌게 됩니다.
사랑과 범죄 사이
다음으로 주목할 키워드는 ‘죄책감’입니다. 해준은 형사이자 남편으로서, 서래에게 끌리는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는 순간 불륜처럼 곧바로 죄책감에 빠져듭니다. 그는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야 할 직업인이지만, 서래를 향한 연민과 호기심, 그리고 사랑에 가까운 감정 때문에 혼란스럽습니다.
특히 남편 사망 사건에서 서래가 범인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면서도, 그 가능성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못하는 해준의 태도는 전형적인 ‘도덕적 갈등’을 보여줍니다. 그는 형사로서의 양심과 욕망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도 완전히 기울지 못한 채 자책합니다.
서래의 죄책감은 그녀 주변 사람들을 스스로가 위험에 빠뜨린다는 사실을 그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사건과 이민자 신분이라는 배경은 그녀에게 나는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서래는 사랑을 느끼는 순간, 그것이 곧 상대를 파괴할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을 느낍니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의 감정은 고조됩니다. 해준은 자신이 그녀를 놓아준 선택을 떠올리며 자책하고, 서래는 "당신을 망가뜨린 사람은 나"라는 죄책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녀는 해준이 자신에게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완전한 상실’이라고 믿게 됩니다.
파국으로 향하는 사랑
마지막 키워드는 ‘욕망’입니다. 헤어질 결심 속 욕망은 단순히 성적 끌림이 아닌 ‘존재를 남기고 싶은 욕망’이자 ‘기억되고 싶은 욕망’에 가깝습니다. 해준이 서래를 향해 느끼는 가장 큰 욕망은, 그녀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녀의 언어, 습관, 눈빛까지 세세하게 관찰하고 기억합니다. 기록하고 녹음하는 행위는 사실상 ‘당신에 대한 나의 이해와 사랑을 증명하겠다’는 욕망의 표현입니다.
반대로 서래는 “당신의 마음속에만은 영원히 남고 싶다”는 욕망을 드러냅니다. 그녀가 택한 사랑의 방식은, 해준이 자신의 인생에서 지워버릴 수 없는 ‘미해결의 감정’으로 남는 것입니다. 해변 엔딩에서 그녀의 선택은 육체의 소멸이자 기억의 영구 각인입니다. 물속에 몸을 숨기고, 흔적을 지우면서 해준의 시야 한가운데에서 사라지기를 선택한 그 장면은 ‘완전히 사라지지만, 동시에 완전히 남겠다’는 모순된 욕망의 집약입니다.
이 욕망은 영화 전반에 등장하는 ‘높이’와 ‘깊이’의 이미지와도 연결됩니다. 산 정상과 높은 건물, 그리고 바다의 깊은 수심은 모두 인물들의 욕망이 극단으로 치닫는 지점을 보여줍니다. 추락사로 시작된 이야기가, 결국 해변이라는 또 다른 낙차의 공간에서 끝나는 구조 역시 의미심장합니다. 또 다른 낙차의 공간에서 끝나는 구조 역시 의미심장합니다. 추락과 잠김은 통제에서 벗어나고, 사회적 규범에서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무의식적 욕망의 은유로 읽을 수 있습니다.
욕망의 방향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해준의 욕망은 끝까지 ‘알고 싶다’에 머무릅니다. 반면, 서래의 욕망은 ‘영원히 모르게 만들겠다’로 귀결됩니다. 그는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형사이고, 그녀는 진실을 숨김으로써 사랑을 완성하려는 인물입니다. 이 어긋남이 두 사람을 함께 살 수 없는 연인으로 만들고, 오직 비극적인 결말에서만 사랑이 완성될 수 있는 듯한 착시를 만들어냅니다.
결국 해변에서 해준이 느끼는 감정은 상실과 절망입니다. 동시에 그것은 서래가 의도한 방식대로 완성된 사랑의 잔향이기도 합니다. 그는 끝내 그녀를 찾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날의 파도, 모래, 안개, 그리고 서래라는 이름을 절대 잊을 수 없게 됩니다. 욕망은 현실의 삶을 파괴하면서도, 기억 속에서 영원히 반복되는 감정으로 남습니다. 「헤어질 결심」은 그 잔인하면서도 아름다운 욕망의 정서를 시선과 침묵, 공간의 배치로 조용히 보여줍니다.
헤어질 결심은 겉으로는 살인 사건을 다루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애착, 죄책감, 욕망이 얽혀 만든 관계 심리학의 집약체입니다. 해준과 서래는 서로에게서 구원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상대의 상처를 더 깊게 건드리며 파국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감시를 애정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불안정한 애착, 사랑할수록 커지는 죄책감, 사라짐으로써 영원히 남고자 하는 욕망이 이 영화 비극의 핵심입니다.
이 글을 읽고 다시 영화를 본다면, 대사보다 인물의 눈빛, 호흡, 카메라가 머무는 시간에 집중해 보세요. 같은 장면이라도 전혀 다른 감정과 의미가 느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