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와 예술, 꿈을 다루는 영화는 많지만, 미드나잇 인 파리와 라라랜드만큼 서로 다른 도시의 공기를 그 장소에 있는 것처럼 선명하게 전달하는 작품은 흔치 않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두 영화를 비교하면서 각 작품이 지닌 사랑과 예술, 그리고 현실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는지 짚어보려 합니다. 같은 로맨스 영화지만 전혀 다른 여운을 남기는 이유도 두 영화의 대비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라라랜드와 함께 보는 미드나잇 인 파리

‘미드나잇 인 파리’는 파리에 여행 온 헐리우드 작가 지망생 길이 우연히 과거의 파리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1920년대 파리의 예술가들, 피카소와 헤밍웨이, 피츠제럴드 부부 같은 실존 인물들이 그의 눈앞에 나타납니다. 이 판타지 속에서 길은 자신이 동경하던 예술 황금기 속에서 다시금 예술과 사랑을 바라보는 눈을 지니게 됩니다. 겉으로는 판타지이지만, 실제로는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할 수 있는가’라는 아주 현실적인 질문을 던지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흥미로운 점은, 라라랜드를 본 관객에게 또 다른 재미를 준다는 것입니다. 라라랜드 역시 예술가가 되고 싶은 주인공 둘이 꿈과 사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는 점에서 비슷한 출발선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드나잇 인 파리는 노래하고 춤추는 대신, 느리게 걸으며 대화하고, 파리의 밤공기와 조명을 길게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라라랜드가 화려한 색채와 음악으로 감정을 ‘폭발’시키는 영화라면, 미드나잇 인 파리는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감정을 ‘곱씹게’ 만드는 영화에 더 가깝습니다. 라라랜드에서 LA는 오디션장, 재즈바, 고속도로 위의 뮤지컬 장면처럼 늘 거대한 쇼의 무대처럼 활용됩니다. 결국 라라랜드를 보며 관객이 "저 무대 위에 올라가고 싶다"는 동경을 느낀다면, 미드나잇 인 파리는 "저 골목을 지금이라도 걸어보고 싶다"는 친밀감을 느끼게 됩니다. 두 영화를 함께 떠올리면, 같은 ‘꿈’과 ‘사랑’이라는 소재가 도시와 연출 방식에 따라 얼마나 다른 색을 띠게 되는지 자연스럽게 대비되어 보이게 됩니다.
사랑과 꿈을 바라보는 차이

‘미드나잇 인 파리’와 ‘라라랜드’는 모두 예술가를 꿈꾸는 주인공이 사랑을 만나고, 결국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그린다는 공통점을 갖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을 바라보는 태도는 상당히 다릅니다. 라라랜드에서 미아와 세바스찬은 각자의 꿈을 위해 결국 다른 길을 선택합니다. 영화는 이 선택이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임을 인정하죠. 마지막 상상 시퀀스에서 '함께였다면?'이라는 가능성을 보여주되, 결국 현재의 현실로 돌아오는 장면은 쓸쓸한 동시에 성숙한 체념처럼 다가옵니다. 즉, "꿈을 향해 가다 보면 사랑을 놓칠 수도 있다"는 메시지가 강합니다.
반면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길은 과거의 예술가들을 실제로 만나면서, 자신이 동경하던 황금기에도 또 다른 ‘더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길'은 자신이 동경하던 1920년대에도 그보다 더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 반복되는 패턴을 통해 영화는 ‘과거 이상향’ 자체를 해체해 버립니다. 결국 '길'이 내리는 선택은 과거의 환상적인 교제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파리의 빗길을 함께 걸어 줄 사람과의 현실적인 사랑입니다. 이 영화는 "과거의 환상을 버려야 비로소 현재의 사랑과 창작이 시작된다"는 메시지에 더 가깝습니다.
같은 ‘헤어짐과 선택’의 이야기지만, 라라랜드가 관객의 가슴을 한 번 강하게 쥐어짠 뒤 놓아주는 영화라면, 미드나잇 인 파리는 조용히 등을 토닥이며 앞으로 나아가 보라고 말해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드나잇 인 파리와 라라랜드 감성차이
두 영화의 감성 차이는 연출과 색채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라라랜드는 전통적인 뮤지컬 형식을 빌려와 감정을 노래와 춤으로 '표출'합니다. 원색에 가까운 강렬한 색채, 철저히 리듬에 맞춘 안무와 카메라 워크는 관객의 감정을 밀도 높게 몰아붙입니다. 감성은 "지금 이 순간을 불꽃처럼 태워 버리자"에 가깝습니다.
미드나잇 인 파리는 음악과 미장센이 훨씬 절제되어 있습니다. 파리 골목을 따라 걷는 카메라, 부드럽게 흐르는 재즈와 샹송, 노란빛 조명과 빛바랜 듯한 색감이 합쳐져 마치 오래된 엽서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감성은 "이 순간을 오래 기억할 수 있게 천천히 음미하자"에 가깝습니다.
라라랜드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끊임없이 도전하는 잔인한 희망을 보여준다면, 미드나잇 인 파리는 자신이 그토록 집착하던 헐리우드 커리어와 옛 연인과의 관계가 사실은 자신의 ‘허세’와 ‘두려움’이 만들어낸 안전지대였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 자각의 순간은 라라랜드처럼 큰 사건이나 공연이 아니라, 대화와 산책, 몇 번의 밤산책을 통해 아주 자연스럽게 다가옵니다.
꿈을 쫓는 예술가의 로맨스라는 비슷한 주제이지만 상반된 감정의 여운이 두 영화를 함께 보는 재미를 선사합니다.